정책제안
교육정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제대로 된 분리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 2025.04.2632645
- 교육주제 : 초중고교육(키워드 :)관련지역 : 전국
현황 및 문제점
지금 학교, 특히 초등학교는 정말 일부 학생들의 노골적인 수업 거부 때문에 제대로 수업이 되지 않은 일이 그저 일상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학생들이 정말로 그러한 본질적인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특히 노골적인 수업거부는 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인 반항은 하지 않는 학생들로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학생들 역시 자신들 수준에서도 충분히 수행가능 한 것들은 하는 아이가 대다수라는 데서 더 그러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러한 대부분의 학생은 잘 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이 계속 쌓여서 이미 학습에 대하여 포비아를 일으키는 경우가 제일 많습니다.
옛날에는 아이들이 엄격한 규칙과 매로 이러한 것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아예 누구나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항상 이러한 아이들에게 소리칠 때마다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느낍니다.
아 물론 공포도 느낍니다. 지금은 소리도 치면 안되는 시절이라서.
조용히 내 몸을 보신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또 열심히 하는 학생들을 보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또 위험한 사고를 칩니다.
보통 제가 이러한 글을 적는 것은 대다수가 이 가장 중요한 점에 대해서 깨닫지를 못하는데 있는데
중요한 것을 고치는 것은 뻔한 것이고, 그래서 사실 조금만 찾아보면 그 답을 다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유명한 호통판사님의 명언처럼 다 아는데 못하는 것 뿐이죠.
그러나 정말로 그런 것을 모르는 사람도 있는 것 같으니 이번에는 논리적 당위성을 빼고 구체적 실현만 적어 보겠습니다.개선방안
가장 좋은 방법은 여기에 처음으로 쓴 글처럼 유급하는 것입니다.
유급 하나로 모든 문제는 99.9%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유급이 안된다면 분리제도를 철저하게 시행해야 합니다. 본래 이 제도 타임아웃은 벌이지만
그럼에도 교육학자들이 이러한 것에 관심을 가졌던 까닭은 가장 중요한게 결국 수준별 수업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마다 ZPD가 다르니 비계가 같은 수가 없고 결국 모든 사람이 모여 있는 수업은 그 누구도 가능하지 않는 수업으로 변질됩니다.
이럴 경우 최소수준을 만족한다고 할 때 수업은 가장 높은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정상이나, 이 ZPD가 최소수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그 학생에게 수업은 당연히 고문이 됩니다. 마치 당신이 전혀 모를 스와힐리어로 이루어지는 수업이 되는 것이죠. 아니, 학생이 똑똑하다면 차라리 스와힐리어로 이루어져도 최소 수준을 만족 하지 못하는 학생보다는 몇 배로 잘합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ZPD가 최소수준을 만족하지 못하면 분리하여 ZPD를 향상시켜서 최소수준안으로 넣는 것을 우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학생들은 분리시키고 이 분리시키는 목적, ZPD를 향상시켜서 최소수준안으로 넣는 목적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것을 아예 제도적으로 하는 두 번째 방법은 수준별 수업입니다. 그게 학생의 배움이라는 목적에 있어서는 무조건 100% 옳은 방향입니다. 그러나 이걸 '무식한 학부모들의 눈치' 때문에 이 나라에서는 못하게 된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다 무식하고 멍청해지게 됩니다. 그게 교육학이 가지는 대표적 결론의 하나입니다. 설사 아니라고 한들, 그 아이가 수업에서 뭔가를 얻을 확률은 1%도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어차피 교사들 말대로 잘할 아이는 어떻게 해도 잘하겠죠.
물론 아예 유럽처럼 이중체계 교육과정도 좋은 수단입니다. 다만 낙인을 찍는 것 같아서 저는 반대합니다. 가능성을 무시하니까요.
세번째, 가드너는 유명한 다중지능 이론을 통하여 아이들의 높은 지능으로 낮은 지능의 기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최소한 이게 아니더라도 학생들에게 ZPD에 맞는, 그리고 현재 인지 발달에 맞는 충분한 휴식과 올바른 강화가 필요합니다. 굉장히 뛰어난 아이에겐 칭찬따위는 당연하고, 심지어 물질적 보상도 필요가 없습니다. 많은 경우, 오히려 아이를 망칠 수 있습니다. 내재적 동기는 유능성 자율성 관계성으로 발달하는데 그러한 외적 강화는 유능성 자율성을 망칩니다. 관계성은 보통 결과로 나타나지 행위로 나타나진 않습니다. 이는 인지된 조절 단계, 의미부여 단계를 넘어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것도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저런 최소를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에게는 역으로 나타납니다. 결국 이러한 학생일 수록 최소기준을 설정하고 그것에 따르는 것이 중요한데도 그러지 않으니 문제가 더 커집니다. 학생은 스트레스가 일반 학생보다 훨씬 심한데, 그런 학생에게 보통 더 많은 학습을 강요합니다. 그럼 당연히 포비아가 형성이 됩니다.
사실 교육과정의 핵심도 똑같습니다. 결국 교육과정을 보면 왜 해야 하는지, 무엇이 중요한지 다 나오는데 이것은 싸그리 무시해버리고 그저 80년대랑 똑같은 식으로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의미가 없습니다. 핵심은 결국 학생 중심인데, 이 학생들의 ZPD가 다 다르면 이걸 전부 다 끌어올리는 것은 애초에 물리적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번째, 분리된 학생들은 지금의 "수업"에 집착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육과정"이 아닌 이유는 교육과정은 전부 유기적인 연결체이며 뚜렷한 목표와 역량을 중심으로 그걸 더 잘하기 위한 방법으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당연히 학생의 상태에 따라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입니다. 반대로 지금의 "수업"을 할 수 있는 ZPD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적에 맞게 비계를 설정하고 끌어올리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요즘 초등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목적지향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대다수의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그게 치명적인 문제는 되지 않는데 이러한 시간만 때우면 되는 방식의(이게 통계가 중학교 학부모들이 말하는 현실) 수업이 가지는 문제가 이러한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됩니다. 올바른 목적이 존재하지 않으니 자꾸 학생들이 다른 학생과 자기 처지를 비교하고 더 비관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수업을 통해서, 이번 학년에 이러한 것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스스로 알고 그 목표를 향해가는 자기 인지는 이번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러한 것은 내팽겨치고 똑같이 하는게 현실입니다. 심지어 옛날처럼 학기말 고사도 없고 패는 일도 없으니 아이들이 목적을 알 가능성이 없습니다. 학기말 고사나 패는일이 잘못되었다고 하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목적"을 올바르게 인지시키지 않았다는 것이지 "지금처럼 목적도 없이" 아무렇게나 하라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목적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이나 교육과정의 인지 발달은 당연히 이루어야할 목표인데, 학생들은 스스로 깨닫지도 못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무책임"한 방식은 이미 한번 실패 한 학생에게 무한의 실패를 강요합니다. 더 끔찍한 것은 대부분이 백보 보면서 자기가 오십보인 것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목표를 기준으로 하면 자기도 출발해서 이제 1부 능선 넘었는데 아직 출발점에서 헤매는 애들을 보면서 자기는 무슨 7부는 커녕 정상 근처로 착각하는 겁니다. 할 의향이 있지만 잘못된 방법을 강요당한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제시만 해주면 금방 뛰어넘어가는데 말이죠. 항상 문제는 이 잘못된 방법이 성경마냥 심각해서 고칠수가 없습니다. 이게 전부 올바른 목표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올바른 목표가 있어야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집니다. 잠을 자던 만화를 보던 놀던 수업을 안들어오던 목표를 달성하면 그게 잘한 것이고 올바른 것이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못하면 그게 잘못한 것이라는 기본을 깨닫습니다. 물론 이 두 가지는 전부다 학교와 교사가 잘못한 것이고 학생은 피해자일 뿐입니다. 둘다 ZPD의 영역이 아예 안 맞는 짓을 강요당한 피해자라는 증거라고 교육학은 말합니다.
학교는 학생을 위해서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교를 다니면서 학생은 누구나 객관적으로 볼 때 나아져야 그 가치를 가집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러한 것은 아예 버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학교가 아니더라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은 결국 학교에서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사 말 잘 듣는 것은 배울 가치가 아닙니다. 학교는 왜 내가 잘 들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곳이죠. 열심히 하는 것도 배울 가치가 아닙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배워야 합니다. 본래 학교는 그렇게 열심히 말 잘듣는 애들이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던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발달했기 때문이죠.기대효과
최소한 학생이 학교를 다니고 정말로 아닌 곳을 다닐 때보다 더 가치가 있었음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사람의 권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효용가치학생이 학교를 다니고 정말로 아닌 곳을 다닐 때보다 더 가치가 있었음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게 사람의 권리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효용가치를 배우고 기회비용을 배웁니다. 하지만 자신의 본의도 아닌데 그러한 선택으로 강제 당한 학교가 나를 위한 기회비용조차 제대로 가지지 못한다면 이는 가장 끔찍한 학대가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집단의 학대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단지 그게 바라는 것입니다.
글로 문제해결을 배울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 해결부터 하는 현실을 봐야
아이들도 그 역량이 길러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좀 더 3-5학년에 신경을 많이 썼으면 합니다. 특히 인지적으로 말이죠.
독일 같은 경우 어차피 5학년이 되면 "안될 녀석"은 그냥 기술이나 배우라고 보내버리고
잘하는 애만 김나지움으로 보냅니다. 이 비율이 30%밖에 안됩니다. 정확하게 아는 겁니다. 인지 발달이 안된 애는 답 없다고.
싱가폴 같은 경우도 초등학교 졸업고사를 망치면 대학교를 못 갑니다. 가는 중학교 자체가 차원이 다르거든요.
이 역시 대놓고 실패자와 아닌 것을 가르는 것입니다. 이는 일본처럼 명문이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과 다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자들, 특히 그 독일출신의 학자들도 어릴 때는 누구나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단지 문제는 그 가능성을 올바르게 깨우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가버린 것 뿐인 것이죠.
단지 그 과학적인 결과를 누구보다 적극적이게 받아들이는 나라인 것이냐
아니면 인정하지 못하고 과학적 결과와 기싸움하고 있느나라냐의 차이입니다.
아이러니컬 한 것은 그럼에도 기 싸움하는 나라에서 더 실제로는 그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이죠.
총 댓글 5
2025.05.0122:28
분리조치를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네요..
2025.04.3014:30
분리 조치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이를 관리할 수 있는 담당자의 시간적 여유와 합의된 역할이 있어야 합니다.
2025.04.2812:00
분리 조치는 지금도 있지만, 사실 제대로 시행하기 힘들죠. 내 아이가 분리 되었다. "1818, 애들이 원래 좀 떠들 수도 있지 지는 원리원칙대로 잘 하나?" 원래 수업 계획과 조금 다른 수업 했을때 태클 걸기, 교사가 학생을 엄격하게 지도 했을때 아동학대 신고가 이어지죠.
2025.04.2612:39
수준별 수업은 전반적으로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일반고에서 배우는 건 전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직업교육을 중심으로 배우는 걸 일반 교육과정으로 두고 학문교육은 특수 교육과정으로 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2025.04.2612:31
분리조치가 규정에 있더라도 교사 입장에서는 민원이나 소송에 대한 부담이 커서 하기 힘들겠죠. 분리전담위원회를 만들거나 그게 힘들다고 한다면 교장이 "분리 여부 결정 및 분리 아동 교육"을 담당하도록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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