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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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원

    국민 교육 헌장의 시대는 끝났다.

  • 2025.06.24
    2172
  • 교육주제 : 초중고교육(키워드 :)
    관련지역 : 전국
  • 현황 및 문제점

    이 이야기는 학교는 생활지도를 하는 곳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두 번째 장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책 한 권을 써도 모자랄 정도인데 고작 4000자 따위로 이야기 하기엔 너무나 힘듭니다.
    일단 제일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사람은 자신의 처한 상황과 배운 것에 따라 같은 것을 다른 식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즉 학교에서, 특히 초등학교에서 생활 지도를 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많은 "못 배운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학교에 와야 할 까닭"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착각에서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첫 번째는 "생활 지도"는 따라봐야 이득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생활 지도가 문제인 까닭은 싸구려 전체주의적 발상을 전혀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안타깝지만 학교에서 "배워야 할 본질"은 배우지 못하고 그저 학교 "생활"을 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탓"에 기인합니다.

    당장 학교 생활 지도의 근거가 되는 법조차 2022년에 신설된 것이고 그것조차도 학교의 장과 교원은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교원의 교육활동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법령과 학칙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라고 하여 "교육활동"이란 목적을 분명하게 합니다. 즉 생활 지도는 교사의 역할도 의무도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실제 서이초 등으로 떠들썩하기 전(법 자체는 그 1년 전에 개정된 걸로 압니다만)의 상태를 살펴보면

    2004년 초‧중등교육법이 개정되면서 학생의 생활지도는 교원의 공적인 교육활동 영역에서 빠졌다. 현재 생활지도의 근거는 학생인권조례나 학생생활규정 같은 학교규칙 뿐이다. 교원이 학생의 용의‧복장 등 생활지도를 하다가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정당한 교육활동으로 보호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교권침해에도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출처 : 에듀인뉴스(EduinNews)(https://www.eduinnews.co.kr)
    와 같은 것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즉 대놓고 2004년부터 생활 지도 그 딴 거 하다가 걸리면 알아서 해라!가 실제 상황이었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면 이렇게 교권 어쩌고가 되겠지만 핵심은 거꾸로 "하라는 교육"은 안하고 학생에게 가혹행위만 하고 있다라는 데서 출발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배경이 되는 사건이 예를 들면 "두발 자유화"인데, 머리가 긴 학생 다운 정신도 없는 것들이 무슨 공부냐 매로 일단 정신상태를 고쳐 놔야 한다 이게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면, 머리가 긴 것과 대체 학업 부진이 무슨 관계냐라는 합리적이고 올바른 의문에 의해서 이런 생활 지도가 철퇴를 맞게 된 것입니다. 핵심은 다른 부분이 아닙니다. 결국 모든 생활 지도는 "학업"이라는 본질과 연계가 될 때 그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이는 전문가들도 강력하게 지적한 부분입니다. 문제는 다시 말하지만 "학업"이라는 본질과 동떨어진 것이 너무 많아서 그 때 생활 지도는 힘을 잃게 됩니다. 학교의 본질은 교육이고, 결국 교육이 올바르게 된다면 올바른 생활 태도를 갖출테니 문제가 없다 이게 전문가들이 제시한 문제를 푸는 핵심이었습니다. 또 하나 제시한 중요한 원리가 "남에게 도움이 되고 자신에게 의미가 없다면 그것은 당연히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즉 생활 지도란 1.학업에 도움이 되어야 하며, 2.타인의 이득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것입니다. 두발 검사를 비롯한 아침 점검이 이 두 가지를 전면적으로 위배했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면서 퇴출 된 것입니다. 역으로 이러한 것들이 이슈가 되면서 학생 인권이 대두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대부분은 올바르게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도 가장 중요한 이 두 가지 원리를 무시하는 생활 지도가 중요하다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대부분의 사람들의 정신 상태는 매우 안타깝지만 쌍팔년도에 멈추어 있습니다.

    이를 가장 잘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그 쌍팔년대 교육을 대표하는 국민교육헌장입니다.
    국민교육헌장은 학생의 배움이 학생을 위한 주체적인 것임을 무시 해버리고, 학생의 배움은 나라를 위한 것이며, 민족을 위한 것이며, 전체주의적 사고로 우리를 위한 것으로 변질시켜 놓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여전히 학생을 옥죄는 것이 생활 지도라는 것입니다.

    최악의 변질이 바로 이것인데, 우리를 위해서(나를 위해서) 네가 내 생활 지도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우리"고
    "너"고 간에 상관이 없는 학생이 그것을 인정할 가능성은 없는 것입니다. 냉철한 사고가 되지 않는 사람들은 올바르게 자신의 환경을 파악해서 떼어 놓기가 힘듭니다. 국민교육헌장의 세대가 지나더라도 여전히 국기에 대한 경례만으로도 우리는 그러한 효과를 얻습니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월요일 아침에 조례라고 모여서 이 짓을 했던 사람들은 이걸 매우 삐딱하게 보면서 이게 맞나 하지 않았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관념이 자기 이득적으로 녹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러한 사람들이 하는 생활지도는 결코 행해야 할 본인의 이득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이런 집단적 사고에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생활지도가 문제인 첫 번째 이유는 해야 할 사람에게 도움이 안되고, 내가 왜 그딴 짓을 해야 하지?라고 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매우 "당연한 의문"이라는 게 지식인들의 태도입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그 이유로 절대로 성립하지 않습니다. 이게 핵심입니다. 왜냐면 지금 당장 "남을 위해서 니가 손해봐라"라고 강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이러한 상황에 처하는 까닭은 "전체 집단 주의에 강제로 떠밀렸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즉 학생이 교실에서 떠들기 이전에, 학생은 혼자 있을 수도 있는데 그 권리를 무시 당했음을 먼저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배움은 1:1이라는 전제 하에 그것을 실현하지 못한 당국의 책임을 뒤집어 쓸 수는 없다가 핵심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학교라는 기관의 목적에 따라 학생은 절대 타인의 배움을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똑같이 성립합니다.

    그러나 생활 지도는 이 목적과 전혀 무관하게 그저 다른 이익을 위해서 공공연히 자행 되어온 악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항상 본질을 먼저 봐야 하는데 본질은 없고 그저 심각한 문제를 어떻게든 동족방뇨로 무마하는데 바쁜 고질병이 똑같이 적용된 것이죠.
    핵심은 생활지도는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목적에 안 맞는 생활지도는 쓸모가 없다인데 그냥 생활지도가 칼질 당한 것입니다.

    개선방안

    그러한 까닭으로 여전히 생활 지도는 문제입니다. 제일 중요한 목적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활 지도가 왜 이득이 되는가, 특히 내 학업에 어떤 이익을 줄 수 있는가(이는 학생이 원하지 않더라도)를 명백하게 면밀하게 증명해야 함에도 이러한 것이 전혀 되지 않으니 여전히 엉망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학생 입장에서는 저게 오늘도 왜 저러지 싶은 것이고요.
    물론 일부 교사가 그런 것을 강조한다고 한들, 당장 학교가 배우는 곳이 아니라 "소꿉놀이"하고 시간 때우는 곳, 혹은 잠자고 사교육 받으러 갈 체력 보충하는 곳으로 바뀐 와중에 먹힐 리가 없습니다.
    특히 후자는 그 까닭이 "학교의 학력에 대한 회의와 비판, 믿지 못함"에서 비롯된 것이니 차라리 합리성이 있다고나 하겠으나, 전자라면 이는 아예 상식부터 안 맞습니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라는 제 1전제부터 무너져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학교는 공부를 하는 곳이라는 당연한 전제가 성립하고, 그 전제에 따른 올바른 근거로 생활지도가 재정립 될 때만
    올바르고 안전하게 생활 지도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생활 지도는 당연히 학생의 여러가지 "권리"를 침해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 까닭을 가져야 하고, 교사는 자신의 전문적 영역인 학습에 관해서만 이것을 따지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이게 지극히 상식적인 결론입니다. 학생이 싸움을 해서는 안되는 까닭은 그런 정신 머리로 올바른 학업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인 거지, 다른 이유가 전혀 아닙니다. 특히 친구에게 피해를 주니까 하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것은 애초에 배우면 나오지도 않는 소리라서 더 문제가 됩니다. 그런 소리 들으려고 학교에 올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안되는 것입니다.

    학교가 배우는 곳이라는 존중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뀌어야 모든 것이 바뀝니다.
    반대로 옛날에 교문 앞 점검이라는 가혹 행위가 가능했던 까닭도 잘못된 믿음이지만 그 바탕이 학교가 배우는 곳이라는
    존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기대효과

    결국 모든 문제는 그 근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있을 때 가장 쉽게 그것을 파악하는 법은 근본을 따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학교는 배우는 공간의로서의 가치를 정립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따질 가치조차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올바르게 바꾸어 놓는다고 한들, 본질이 어긋나면 반드시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그게 가장 쉬운 논리적 법칙입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학교는 배우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방법을 통해서던지 말이죠.

    그리고 지금은 역설적으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생활지도"하는 사람을 새로 만들어서
    학교 교원이 해야 할 의무가 아님을 2004년과 달리 정말 제대로 밝히는 것입니다.
    그게 2004년에 하려고 하다 못한 제일 큰 문제입니다.
    2009년에도 말이죠.

    당시 결국 깨어있던 지식인들, 뛰어난 교육계의 인사들도 찬성한 가장 큰 까닭은
    결국 생활지도는 당연히 교육과 별개의 영역임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이를 실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다른 나라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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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댓글 2
포로로리 2025.11.0116:56
학교는 공부하러 오는 곳이지 생활훈육 받으러 오는 곳이 아니죠. 생활지도 전담직 따로 두고, 교사는 그냥 가르치는 데 집중하게 하면 됩니다.
mi******* 2025.06.2415:28
고상한 학문 교육만 하시려면 대학 교수를 하셨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