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안
교육정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창의성·인성·융합역량 등 미래핵심역량을 키우고, 능동적 학습자를 만들 생각은 있는가?
- 2024.04.1825825
- 관련지역 : 전국
현황 및 문제점
창의성·인성·융합역량 등 미래핵심역량을 키우고,
능동적 학습자로 성장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시기를 대비하기 위해 학교와 수업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라는 글을 교육부에서 하고자 하는 정책에서 보고 가져왔습니다.
근데 진짜로 그런 학생을 맞이할 준비가 학교는 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사실 저러한 학생을 한마디로 쉽게 설명하면 '생각을 할 수 있는 배우려는 학생'입니다.
저는 이럴 때 마다 밀의 명언이 생각이 납니다.
'돼지'가 스스로 생각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자기 입장밖에 못 보기 때문이다라는 말입니다.
'진짜 생각을 할 수 있는 학생'은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동으로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돼지'는 그 생각이 '자기 이득'과 관련된 것에서만 일어날 거라고 착각을 합니다.
'가장 무섭고 기본적인 문제'는 그런 학생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내가 왜 이러고(교실에 끌려와) 있어야 하는가'라는 겁니다.
의외로 이 것은 문제가 안됩니다. 그러한 것을 발견할 것은 넘치고, 왜 성현들이 항상 배움은 끝이 없다(청출어람 청어람)라고 하는지는
금방 알게 됩니다. 문제는 두번째부터 시작됩니다.
'저게 날 가르칠 자격이 있나? 내가 저 사람으로 부터 뭘 얻을 수 있을까?'
배움의 주체가 학생이 되면, 그 순간부터 당연히 교사는 밀려나가게 됩니다. 더이상 학생에게 하나의 '도구'이상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참고로 성현들은 이걸 너무나 당연히 여겼습니다. 가장 유명한 말은 '제자가 가장 큰 죄를 짓는 것은 스승을 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할 수 있죠. MBTI와도 관련이 있는 니체의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사들은 그럴 준비가 되어있는지 의문입니다.
진짜 심각한게 '초등학생'은(전 그들도 먼저 인간으로 봅니다만) 그렇다 치고, 동등한 교사에게도 그게 안됩니다.
관련이 있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코로나 덕에 많이 줄어들었지만 참 '쓰잘데기가 없는 참여 연수'가 많습니다. 이렇게 강제로 끌려가서 들어야 하는 연수라도, 그 본질에는 동의하니까 준비하고 질문할 것을 생각한 다음에 참여를 하러 갑니다.
그런데 와서 '강사라는 돼지'들이 보통하는 짓이 쓸데도 없는 자기 소개와, 소위 아이스 브레이크라는 짓입니다. 전 그럴 때 욕을 하고 싶습니다. 나는 '돼지'가 아니라 '사람'이기에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하지 않아도 전혀 강의를 듣는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그런 강사들은 질문을 한 두개만 던지면 그저 땀을 흘리면서 멀리서 왔다는 둥 핑계를 대며 허둥지둥 도망가기 바쁩니다. 근데 그런 걸 통해서 내가 뭘 배울 수 있겠습니까? 그게 바로 '능동적인 학생'을 대하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능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학생은 '너따위'엔 관심이 없습니다. 내가 배울 것에 관심이 있죠.
물론 외국의 올바른 '연수'는 보통 10분 이야기 하고 50분 질문으로 채우는게 '정상'입니다.
그런 학생은 당연히 '내가 배우고 싶은데 배울 것이 없고, 배우지 못하는 것'을 정상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다른 학생들처럼 시간이나 때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보통 심각한 수업 방해자가 됩니다. 이는 "매우 정상적이며 바람직한 행동"인데도, 일부 교사의 편의나 행정 편의, 그리고 잘못된 '무식한 신념'에 의해서 그가 악인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그렇게도 교육에 대해서 쓴 소리를 한 것입니다. '위와 같은 능동적인 학생'은 아인슈타인과 다름이 없는 자세를 가지니 그에게도 똑같습니다.
당연히 그렇기 때문에 배우려는 학생은 '래포'따위 헛소리에 지배되지 않습니다. 물론 원래 '래포'란 그렇게 '생각있는 학생'과 '생각있는 교사', 즉 '사람'과 '사람'사이에 성립하는 것이지 '돼지'와 같이 갈 수 있는게 아닙니다. 누구나 저게 나에게 도움은 안되는데 대접받으려고 한다면 그걸 이상하게 여기지 그걸 당연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게다가 생각을 할 수 있는 학생은 그게 왜 문제인지도 잘 설명할 수 있을 가능성까지 가집니다. 너랑 내가 '사이 좋은'것과 배움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당연히 수업시간에 하는 '쓸데 없는 활동'에도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히 '모든 활동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 '교사'가 '돼지'라면 그걸 이해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교사는 '자기 감정', 그리고 '경험'밖에 없는 수준이라서 이걸 깨달을 능력이 안됩니다. 그런 교사들은 '네가 다른 학생들을 방해해서 문제'라니, '감정적으로 너무 공격적'이라니 자기 수준에 맞는 잘못된 것들을 문제로 삼습니다. 학교의 목적과, 무엇보다 중요한 '학생의 목적'은 아예 모르는 것입니다. 학생은 그런 '앞의 돼지'에게 별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건 '네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니거든요. '앞이 무식하고 멍청하고 생각이 없는 것'을 '학생'이 책임져야할 까닭은 없습니다. 가장 끔찍한 것은 '옆'에서 따라하는 경우입니다. 그럴 때 '옆'이 따라하는 것을 '학생'의 문제로 삼는 수준은 너무나 흔해서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생'은 배울 것이 없으므로 그 법칙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지만 '옆'은 그렇지 않음에도 문제로 삼는 것이죠.
이런 곳이 현재의 학교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학생'은 학교에 있어야 할 까닭이 있을까요?
그렇다고 '학생'이 눈이 부신 천재도 아닙니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다른 것을 보고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는 것일 뿐, 그 자체를 보장 받는 것도 아니며, 당연히 수천년을 쌓아온 '그 이상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정, 지식을 순식간에 전부 체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것을 더 빠르고, 목적에 맞게 계속 쌓아나갈 수 있을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배워야 합니다.
다만 쓸데 없는 게 뭔지는 아니까, 제대로 배우고 싶을 뿐이죠. 그런데 그런 학생을 위한 곳이 없습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한 곳은 학교에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학교는 강제적인 교도소와 같은 곳, 파놉티콘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자주라고 외치는 교육의 목표와 다르게 자주가 설 곳이 없습니다.
여전히 무의미하고 쓸모가 없는(교육 목표를 생각하면) '교육 계획'이라는 종이 쪼가리와, 교과서라는 종이 쪼가리가 그를 짓누릅니다.
학생은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데 앞에서 '강제로' 못하게 막고, '자기가 원하는(사실 누군지 잘 모르는 어떤 자가 원하는 것)을 시킵니다.
그게 우리나라 학교의 본질입니다. 스스로 공부하고 싶은 학생을 위한 제도는 단 1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학생들을 그저 '지능'이나 '성적'으로 잘라내면서 무시해버립니다. 자유를 억압합니다.개선방안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교육계획'따위를 없애는 것입니다. 아니면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교과서'따위에나 의존하는 시간 진도를 '가르치는 것'으로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 개념이 먼저 서야합니다.
그래야 가장 최우선적으로 깨달아야 할 '학습역량의 차이'을 인정하게 됩니다.
당장 '문해력'이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8살의 격차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는데도, 이걸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렇게 전부가 다른 격차를 가진다면 실제로는 가장 뛰어난 학생부터 맞추어서 내려와야 합니다.
하지만 제일 낮은 학생에 맞춰서 억지로 진행합니다. 그러니 수업이 박살이 나게 됩니다.
다른 학생들도 뛰어난 학생을 보면서 공부를 할 마음을 가져야 하는데, 다들 답이 없는 수준에 맞추니 절망을 배웁니다. 감옥입니다.
다음으로 또 중요한 것이 '자유'의 확립입니다. 순전히 교사 편의와 바램으로는 아이들이 다 딱 2월이 끝나면 제대로 다 배우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소리입니다. 게다가 매우 '끔찍한' 짓입니다. 이러한 시스템 때문에 더욱 더 '생각할 수 있는 학생'들은 적극적인 수업의 반란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유급'이 없는 이나라 시스템 상 결국 '대다수의 학생'을 바보로 만들고 '학습 미달'로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이것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는 모든 학생이 딱 맞추어 모든 과정을 딱 학습하는 거지만, 불가능하고, 현실은 모든 학생이 다 '끔찍한 수업 소꿉놀이'에 질려서 '다 하차'하는 정상적인 상태가 만들어집니다. 그것도 모르고 그저 교사만 신났죠. 그러면서 다음 학년이 시작되면 아이들이 왜 옛날같지 않는지 고민합니다. 지금은 두들겨 팰 수가 없으니 학생들의 '자유를 억압당한 감정'을 제어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조금이라도 생각을 하는 학생'이 나오면 이러한 소꿉놀이는 심각하게 망가집니다. 이게 진짜 황당한 것입니다.
다같이 '돼지'에 머무르고 '사람'이 아니어서 소꿉놀이가 잘 되면 이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면 '소꿉놀이'가 항상 끔찍한 장애물이 되는 것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뛰어난 학생은 '단 하루'만에도 1년의 수업을 끝낼 수 있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끝낸 사람들을 위한 시스템을 확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적어도 '자유와 배움'을 훼손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사야 어차피 자기가 만드니까 '확증편향'에 빠져서 이게 당연한 걸로 여기겠지만 학생입장에서는 '내가 딱 일정 시간 일정 기간에 맞춰서 일정한 목표를 이루어 내야 하는데, 심지어 더 빨리 해도 늦게 해도 안되지만, 늦게 하면 기회조차 더 없다'는 끔찍한 노예생활에 불과한 것입니다. 게다가 이 일정에는 여유조차 없어서 한번 실패하면 그대로 나락으로 가게 되는 지옥열차를 탑승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학원'을 다닐 수 밖에 없죠.
그런 정신나간 지옥열차를 탑승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사실 '돼지'도 싫을겁니다. 왜 싫은지 설명이 안되는거지.
그런데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게 학교 수업의 본질이고 전부입니다.
안 그러는 사람도 있기는 하죠. 그러나 이건 '교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본질의 문제라서 조금이라도 '깨닫는' 순간 엉망이 됩니다.
끔찍한 건 당연히 그런 '교사', 즉 '사람'은 그걸 '학생'에게 강요할 수 가 없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떠드는 것'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문제'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모르면서 떠드는 것'이죠. 이 미묘한 차이는 '사람'으로 살기에 매우 중요하지만,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겐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당연히 이건 '학생'도 똑같습니다. 학생은 자신이 '떠드는 것'을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것처럼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어떤 뛰어난 그러한 문제아들도 반성따윈 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마크 트웨인이나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이 학교를 그렇게 매섭게 비판하진 않습니다.
"나는 학교가 내 교육을 방해하도록 내버려 둔 적이 없다"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은 그 무엇보다 '능동적 배움'에 어울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학교는 더 이상 '같은 시간'에 '학습'이 끝난다는 허황된 착각을 버리고 각자의 시간이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더는 쓸데 없는 '수업의 재미'와 같은 것에 시간을 쏟지 말고, 스스로 '재미'를 찾을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당연히 학생들도 '쓸데 없는 수업의 재미'따윈 안 찾습니다. 이래도 시간을 때워야 하고 저래도 때워야 하니 재미만 찾는 것 뿐.
그러한 것이 먼저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아무리 AI를 통한 수준별 수업을 한다고 해도 아무 의미도 없고, 아무런 성과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실제로 제가 해본 것이기에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믿어주고, 학부모 관리자가 아무 신경도 안쓰고 '학급의 자유'가 주어지니 학생들은 놀라운 성과를 보였지만
'학부모', '관리자'가 참견을 하고, '학급의 자유'가 사라지니 놀라울 정도로 아이들은 희망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게 변했습니다.
특히 소꿉놀이가 길어질수록 이러한 현상은 심각하고, 결국 '댓가'만 바라는 현상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동적인 학생'의 본질에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 시스템은 결국 학생들이 '서로'간에 눈치만 보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내 배움에 집중하지 않고, 결국은 타인과 비교하면서 '다 바보니까 괜찮겠지'하는 시스템이 되었습니다. '자주'를 빼앗으면 당연히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노예의 다툼이죠. 당연히 이러한 스트레스는 모든 학생간의 분란의 근본이 됩니다. 항상 '돼지'들은 '왜' 감정이 일어나는지는 다루지 않습니다. 그건 '사람'의 영역이니 말씀드리면 '그 감정'을 내가 '겪기'때문에 나오는 것입니다. 누가 친구를 괴롭힌다면, 그것은 '그가 괴롭힘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를 잘 살펴보면 누구보다 이 시스템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걸 모르면 그 원인을 서로간에 지목하고 마녀사냥이 일어납니다. 원래 화가 나는 것은 조금씩 쌓인 것이 마지막에 마지막으로 쌓여 샴페인 터지듯 튀어 나오는 것을 모르기에 그 원인이 자기에게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감정에 폭발하여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걸 '상위'에는 못하니 항상 '약자'들만 당하는 것입니다.기대효과
실제로 우리가 바라는 그 '학생'이 되려는 '후보자'들이 희망을 잃고 가장 끔찍한 '돼지'로 돌아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돼지를 사실 보통 사이고 패스니, 소시오 패스니 이렇게 부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자기 감정'만 소중한 사람들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많은 상황이 의외로 이러한 '후보자'들의 흑화로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바르게 생각을 하게 된다면 '내 앞의 돼지'로 내가 '힘들어 할 필요'도 없고, 또한 이러한 상황이 항상 '운이 없는 것'일 뿐이며, 그건 항상 있는 것임을 알겠지만, 그러기 전에 바뀌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솔직히 그런 것을 바라기엔 너무나 힘듭니다. 결국 이나라의 학교는 '능동적인 배움'을 하려는 사람들을 그러지 못하게
막고 억누르며 목을 죄어 다시 '돼지'가 되도록 만드는 데 모든 총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사회는 항상 '자기 감정'밖에 모르는 돼지들의 알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어쨋거나 혹시 가뭄에 콩나듯이(ai로 맞춤형 한다고 해서 나올 가능성은 0.01% 오를까 의문이지만) 그래도 나오는 '사람'들이
조금은 덜 힘겨워질 가능성이 있을 것이고, 조금은 더 그러한 사람들이 우연히 뛰어난 발견이나 성과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사람들이 말하는 문제를 그대로 쌓아두고서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가 바라는 사람들이 나오길 바라는 것은 정말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똑같고, 그래서 우리는 아마도 사실은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건 아닌지
한번 더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 문제를 만들었을 때와 똑같은 수준으로 생각해서는 그 문제를 풀어나갈 수 없다."
총 댓글 5
2024.04.2510:47
교육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의견을 알 수 있는 글이나, 제안하시고자 하는 정책의 요지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책제안 보다는 토론이나 자유게시판을 활용해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울러,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워딩이 상당히 날이 서있어 같은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조금 불편합니다.
정책제안 보다는 토론이나 자유게시판을 활용해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아울러,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워딩이 상당히 날이 서있어 같은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조금 불편합니다.
2024.04.2107:11
교육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하지만 문장 표현에 있어 격양된 어조나 내가 알고있는 지식을 너희들은 왜 모르는거지 같은 표현들은 보시는 분들에게 반감을 살수도 있다봅니다~
이러한 교육철학과 관심을 더 많은 분들이 알수 있도록 조금은 풀고 순화해서 활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문장 표현에 있어 격양된 어조나 내가 알고있는 지식을 너희들은 왜 모르는거지 같은 표현들은 보시는 분들에게 반감을 살수도 있다봅니다~
이러한 교육철학과 관심을 더 많은 분들이 알수 있도록 조금은 풀고 순화해서 활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4.04.1905:47
한번 정도 생각할 좋은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은 정책 제안이 아니라 옆에 있는 정책 토론에 올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내용은 정책 제안이 아니라 옆에 있는 정책 토론에 올리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2024.04.1823:25
전체적인 내용에 의미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단어표현이 너무 강해 읽는 분들에 따라 읽기가 불편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그런데 단어표현이 너무 강해 읽는 분들에 따라 읽기가 불편할 수도 있을것 같아요
2024.04.1820:48
'같은 시간에 학습이 끝난다는 착각을 버리고, 각자의 시간이 다름을 인정 하는 것'
학년의 구분이 없고, 같은 교실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로 학급을 꾸릴 필요도 없겠네요
학부모와 관리자가 참견을 안하는것
근데 ' 교사' 가 '돼지' 면 아이들은 누가 교육을 합니까?
아이들이 교육의 주체니까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건가요?
학년의 구분이 없고, 같은 교실에 같은 또래의 아이들로 학급을 꾸릴 필요도 없겠네요
학부모와 관리자가 참견을 안하는것
근데 ' 교사' 가 '돼지' 면 아이들은 누가 교육을 합니까?
아이들이 교육의 주체니까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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