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안
교육정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진짜 교사가 자율적 수업을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 2024.05.0432172
- 관련지역 : 전국
현황 및 문제점
이런 제안을 드리는 까닭은 현재 문제의 핵심이 '교육과정', 그리고 '교육목표'가 '역량'임에도 현 체제에서는 이 역량을 키울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분석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고발합니다라는 영상이 있습니다. 한동안 소위 '깨어나랍시고' 많이 보여주던 영상입니다.
물론 그걸 '보여주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미 '답이 없음'을 증명했다는게 문제지만요.
거기엔 여러가지가 나오지만 이것과 관련있는 핵심은 100년동안 단 하나의 방식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들어서 IB같은 소리가 또 나오고도 있지만, 어차피 IB가 되던, 학생중심의 다른 방법이 되던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들은 결국 '교수'중심의 학습이라서 학생중심의 정점에 달한 '역량'과는 절대로 함께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역량'의 핵심은 반대로 도입했습니다. 바로 '유급'과 '차별'입니다. 유급을 시키고 잘하는 아이들만
뽑아서 수월성 교육을 시킴으로 '역량'을 우리가 길러야 하는 까닭을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래도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한 '외국'과 이나라는 분명히 가는 길이 다릅니다. 또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 숫자는 더욱 더 우리가 따라가기 힘들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역량 중심은 반드시 필요하고(이는 '교육전문가'라는 교원들 따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세계유수의 석학들이 모여서 낸 결과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강조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역량 중심은 해야 하는데, 그 본질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제도는 갖추고 있지 않는 것입니다. 이게 결국 문제입니다.
학생들은 그렇기 때문에 전혀 불안함도, 초조함도, 없습니다. 아예 공부를 해야할 까닭을 못 느낍니다. 그리고 이게 만악의 근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수업제도는 학생 입장에선 '어떻게든 40분(45,50분)을 때우는 제도'입니다. 어떻게든 내 자유를 40분간 억압당하는 것이 학생의 입장에서 보는 수업의 본질이니 어떻게 잘해야할 필요성을 아예 느끼지 못합니다. 수업이 어렵고 지루해지면 당연히 학생들은 '몇분 남았냐' 이러면서 소곤소곤 대고 딴짓을 하기 시작합니다. 저학년은 아직 눈치가 없어서 대놓고 교사에게 몇 분 남았냐고 묻기도 합니다. 이걸 어처구니 없게 지금 제도에서는 교사의 문제로 삼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도 어이가 없어지고, 이젠 '내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 '수업을 해야 할 까닭'을 내팽겨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저 처럼 우직하게 '그 까닭'만 쥐고 있으면 학생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그렇게 되면 결국 소수의 공부하던 학생들만 피해를 보는 어처구니 없는 상태가 됩니다. 그것을 방지하고자 이번에 '새로운 제도'를 주었으나 이것이 제대로된 교실을 만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당장 '안나가겠다고' 버티는 학생을 끌어낼 방법이 없죠. 물론 그렇게 학생을 끌어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나간 학생'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만 '있는 학생'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대부분의 학생은 억지로 '40분을 버티는' 지옥을 택하고 그 지옥을 '경험'이나 '사고'로 연결하고 싶지 않는 것은 누구나 당연한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의 학생은 심지어 그 뒤에도 끊임없는 공부의 지옥에 매달려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유'를 위한 교육에 '자유'가 없습니다. 그것도 '없어야할 까닭'이 없는데.개선방안
개선 방안의 핵심은 '40분에 끝을 내야 한다는 것'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외국은 다시 말하지만 경계선을 아예 1년으로 두어서 막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래서 전 처음 쓴 글이 '유급' 다시 하자였습니다. 그게 최소한의 제도적 경계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 본질은 아닙니다. 핵심은 '시간'을 때우는 것은 학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래서 예전에 운이 좋았기 때문에 학습을 5분만에 끝내고 35분동안 노는 이런식의 수업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항상 아이에게 올바른 자유를 주었을 때 얻는 결과는 무조건 주지 않았을 때 보다 좋았습니다. 핵심은 그런 아이를 부러워 하면서 다른 아이가 멋대로 규칙을 어길 때 올바른 제재를 가할 수 있느냐인데, 아이들이 다들 선해서 그런지 이런 걱정은 안해도 되었던 것도 큰 이유였습니다. 다들 빨리 끝내려고 하지, 안하고도 그렇게 멋대로 놀려고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 이후에는 이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관리자도, 옆반의 담임도, 학부모도 수업을 10분만 하는 것을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10분도 지루한 시간이고, 누군가에게는 40분도 모자란 시간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뛰어난 교원'의 기준도 달라집니다. 원래 상대평가라는 것이 그런 것입니다. '멍청이'들도 줄을 세우면 그럴싸해보이는 것에서 만들어진 것이 상대평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는 항상 '본질'을 엉망으로 만듭니다. 뛰어난 교원의 기준 역시 그렇게 망가졌습니다. 진짜 뛰어난 교원을 찾는 게 아니라, 그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구르는' 교원이 뛰어난 교원이 되었습니다. 머리에 든 것은 오히려 없어져 갑니다. 이 까닭이 바로 40분이라는 시간에 얽매이기 때문입니다. 40분이라는 시간에 얽매이면 당연히 그 동안의 '양'으로 승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그저 좀더 다양하고, 더 많은 것을 가져오면 '실제 학생의 수준 항샹'과 관계없이 대단해 보이는 것입니다.
항상 말하지만 이런 말을 제가 할 수 있는 까닭은 '최악의 학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향상'이 되었다면 전 그냥 따라할겁니다.
하지만 그 딴짓거리를 해봐야 '최악의 학력'의 그래프가 더 기울어질 뿐이라면 안하는 게 '머리가 있다면' 해야할 방침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더 쉽습니다. 원래 대부분 '우수함'은 시간으로 증명하지 양으로 증명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최초'는 잘 알아도 '최대'는 잘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시간 자체를 하나의 변수로 두면 굉장히 쉽게 우수한 교원을 증명할 수 있고, 동시에 본질도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습니다. 간단합니다.
'먼저 성취기준을 전부 만족시킨 교원'이 우수한 교원이 되는 것입니다. 1년의 시간중에 성취기준을 전부 1달안에 끝마치는 교원, 한 단원을 1주일안에 끝내는 교원, 40분의 시간의 할 양을 5분안에 끝마치는 교원이 거꾸로 진짜 우수한 교원입니다.
물론 교사가 끝냈다고 우기면 안됩니다. 반드시 그것은 학생의 평가로(이때의 평가는 절대 관찰따위는 불가능합니다) 증명해야 합니다.
다행히 성취기준은 간단히 학생들이 만들 수 있는 과제나, 혹은 써 낼 수 있는 과제로 되어 있습니다.
그게 올바른 것입니다.
당장 지금 현 상태를 보면 저걸 가지고 학생들이 놀아도 되느냐 같은 헛소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학생의 90%는 성취기준을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도 반대로 저렇게 되면 '할 가장 본질적인 이유'가 생깁니다. 내가 먼저하면 먼저 쉴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논리(심지어 교사사이에도 적용되는)가 생겨납니다. 그러면 먼저하고 떳떳하게 쉬는게 낫지, 굳이 그걸 안하고 버팅기면서 신경질 싸움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료의식도 거꾸로 이럴 때 생겨나는데, 옆 사람이 잘해야 나도 잘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수업시간을 40분으로 고정하면 항상, 왜 자기가 한 걸 남에게 보여줘야 하냐는 학생들이 생겨납니다. 거꾸로 시간의 억울함이 더욱 학생들을 죄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40분이 수업시간입니다. 정말 특히 운 좋게 빠르게 성취기준을 달성할 수 있는 학생들이 있어도 이 감옥에 갇혀서 그들은 나오려 하지 않습니다. 아니 똑똑한 것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시간은 가거든요. 굳이 열심히 할 까닭이 없죠. 진짜 머리가 좋은 학생들이라면 거꾸로 이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다른 학생이 10년할 걸 나는 1년이면 가능한데 왜 미리 9년을 먼저하는 '멍청한 짓'을 하겠습니까?
다만 그런 학생들도 나중에 깨닫는 끔찍한 사실은 '초등학생'때 머리를 써야 1년에 가능하다는 것이죠.
머리를 쓰면 학생을 바보로 만드는 40분의 제도가 결국 이 나라의 교육을 망치는 것입니다.
교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전 수업을 보러갈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 왜? 그게 나한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양심과 책임감이 있어서 진짜 '순수하게 학생들을 배우게 해줄려는 목적'으로 다니고 있기도 했지만, 이제는 결론조차 이렇게 나버리니 더 갈 이유가 없습니다. 대부분은 '저 목적'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돈'이나 '인센티브'를 외치겠죠. 사실 그게 나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게 나쁜 것이 되어버리는 까닭은 '본질'을 망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사도 이러한 본질을 다시 가지고 오면 누구나 수업 연구를 못 봐서 안달일 것입니다. 아니 나는 수업을 30분도 넘게 해야 하는데 옆반 교사는 5분이면 끝난다네? 이게 말이 되냐? 나도 빨리 5분에 끝내고 쉬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학생들과 잘 타협해서 1년 할 것을 5개월만에 끝내고 2학기는 그야말로 학교가 곧 자유로운 자기계발의 장이 되는 것도 좋죠. 사실 거꾸로 '교육의 본질'에는 이러한 것도 필요합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학생은 '역량'이 길러지지 않는데, 당연히 역으로 말하면 광대한 자유가 주어질 때 본질에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높은 진취성은 시간을 필수로 요구합니다
그리고 교사에게도 더 중요한 것은 진짜로 내재적 동기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욕구이론에 따르면 고작 2단계따위의 물질에 허덕이고 헤메이는게 아니라 진짜 자아실현의 욕구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학생의 입시가 힘든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기 때문입니다. 입시란 기본적으로 소위 붉은여왕의 딜레마입니다. 해도 해도 뒤쳐지지 않을 뿐이라는 것은 결국 맨 뒤에서 처지는 물체를 잡아먹는 괴물이라도 없지 않으면 별로 그 욕구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면서 조금씩 발전되어가는 자신을 볼 때는 그와 다른 본질적인 자신감과 욕구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핵심은 이러한 발전은 '상대방'에 비춰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공부를 못했다가 잘하게 되는 학생들이 그 본질을 끝까지 안고 가서 학문적 성취를 내는 경우(실질적으로 역사에 남는 경우)가 또 많은 것입니다. 의외로 이러한 사람들은 평범한 중간 수준의 사람이 갑자기 잘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교사가 수업에 흥미를 가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역시 여기에 기인하는 것이 큽니다. 정말 잘해봐야 본전이라는 말이 어울립니다. 내 노력의 보상이 없습니다. 그러니 잘 할 의욕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교사들이 이미 본질적으로 '학습 부진아'와 마음가짐이 동일합니다. 이게 교사의 잘못이냐면 아닙니다. 왜냐면 '올바른 태도'를 가질 수 있지 못하게 억지로 막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업을 '소꿉놀이'나 '짜여진 각본'이라고 보통 표현하는데,(이 말을 또한 자주 수업공개때 합니다) 학생도 교사도 40분이란 강제로 정해진 시간과, 억지로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만 없어져도 '자유'라는 말이 성립하지만, 둘 다 있다면 그것은 '강제로 만들어진 불합리한 연극'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유없는 배움은 의미가 없습니다.기대효과
적어도 본질적으로 배워나갈 수 있는 학생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런 학생들이 시간에 좌절하여 끝장나는 일이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최악으로 작용해도 그것은 현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단지 문제가 되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모두가 공평하게 지옥을 맛봐야 한다.' 이게 평등이다라고 한다면 평등에 위배가 될 것입니다.
먼저 다하고 노는 차별이 나오겠죠. 지금은 거꾸로 이건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너 다했지? 시끄럽게 여기서 떠들지 말고 '거기'로 가서 놀아.라고 하면 되거든요.
웃기게 지금 바뀐 시스템은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수업을 방해하고 떠드는 것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되었기 때문에 본질적인 수업은 가능해졌습니다.
이제 문제는 하나입니다. 40분의 수업을 10분동안 하는 걸 문제로 삼는 관리자와, 학부모의 어이없는 참견.
그것이 없다면 교육은 한층 나아질 것입니다.
드디어 최악의 교육현장에서 단 한 줄기의 빛이 나왔습니다.
아 그리고 쓸데 없는 행정업무도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쓸데없는 수많은 계획들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런 계획은 '40분'이라는 '쇼'에 맞춰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토론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덧붙이고 싶습니다.
교사에게는 전문성이 있습니다. 이것도 교육기본법에서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결국 이것은 위와 같은 이유로 전혀 보장되고 있지 않습니다.
수술을 정해진 시간에 정한 방법대로 끝내라고 하면 이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할 수 잇을 것입니다.
'정해진 시간내'가 아닙니다. '정해진 시간'입니다.
총 댓글 2
2024.05.0610:52
토론을 원하신다면 토론 게시판으로 글 이동 조치 부탁드립니다.
2024.05.0515:55
궁금한것이 있습니다.
학생의 90%는 성취기준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어디서 발표된 결과인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개인의견이신지요?
학생의 90%는 성취기준을 만족하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어디서 발표된 결과인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개인의견이신지요?
비방, 욕설, 중복글 등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게시글, 상업광고 등 내용에 성격과 맞지 않는 글은 삭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