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제안
교육정책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고 소통하는 공간입니다.
느린 학습자를 위한 사고력 증진 교육이 필요하다.
- 2024.07.0826133
- 교육주제 : 초중고교육(키워드 :)관련지역 : 전국
현황 및 문제점
요즘 들어서 또 하나의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느린 학습자이다. 장애 아동이 늘어나는 것과 달리 사실 느린 학습자는 원래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경계선 지능은 상대적으로 정해지는 것이고, 또한 그 수는 항상 13%가량으로 적은 수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이 큰 이슈가 되는 까닭은 사실 특히 우리나라의 인구가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만약 300만 명이 필요한데 인원수가 500만 명이라면 특별히 그걸 신경을 써야 할 까닭이 집단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개개인에겐 매우 잔혹한 일이지만, 200만명이 도태가 되더라도 오히려 넘치는 상태라 300만 명을 더 우수한 자원만으로 채울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이러한 경계선 지능은 많은 세월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작금은 그렇게 무시하기엔 사람수가 너무나 작아서 경계선 지능도 소중한 자원으로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래서 이러한 요구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300만명이 필요한데, 거꾸로 다 채워도 300은 커녕 250만이 안되는 상황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적 장애와, 경계선 지능은 좀 의미가 다르다. 지적 장애도 그 판단을 IQ로 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 문제가 존재한다. 지적 장애는 실제로 일부 가벼운 3급(실제로 그래서 IQ수치도 경계선과 동일급이고 남이 보기에 장애인이라기엔 실망할 수준)을 제외하면 아예 변화 가능성이 없고, 현실적으로 넘어갈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데, 경계선 지능은 그게 없다.
그래서 시간을 더 들이고, 도전을 더 하면 똑같이 할 수 있다. 그래서 경계선 지능을 느린 학습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이 고지능자는 물론이요 그저 아이큐가 10도 차이 안나는 80대 보통 학생과 비교해도 압도적으로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실제로 학습을 하는 데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그러한 느린 학습자를 위한 맞춤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실제로 그 고 지능자에게 요구되는 메타인지적 관점으로 우리가 살펴보면 이는 굉장히 큰 모순이 있다.
학생 A와 그 외 학생의 체력을 측정하기 위해서 우리가 달리기를 한다고 하자. 제한된 시간에 많은 거리를 뛰는 사람이 잘 달리는 경기로 순위를 가른다. 그런데 이 때 학생 A가 만약 절름발이라면 그 학생은 무조건 달리기에서 뒤처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 학생 A는 체력 자체가 떨어진다고 판단할 근거가 될까?
IQ는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우리가 학습을 할 때의 상황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상황과 IQ는 실제 목적과 얼마나 상관 관계가 있냐는 의문을 가져볼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김응용, 그리고 김영훈같이 IQ가 높은 사람인가?
아니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그리고 실제 IQ를 측정한 적이 있는 리처드 파인만과 같은 사람인가?
후자가 원하는 전부라는 것도 위험한 생각이지만 적어도 전자 같은 걸 원하진 않을 것이다.
그저 '어떤 점수'가 높을 뿐, 그로 인한 그 어떤 기대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수준은 적어도 국가에서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실 이 IQ는 신뢰도를 항상 의심 받는다. 당장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IQ가 얼마이던 간에 이것이 상대 측정이기에 무조건 그 의미로서는 저 270대의 김영훈을 따라올 수 없지만, 실제 아인슈타인의 지적 가치는 저런 2xx대 아이큐 10만명을 가져다 놓아도 비교할 가치가 못 된다. 실제로 비네는 160 이상의 IQ의 신뢰도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다고 이야기 했다. 실제로는 130도 기대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IQ를 가지고 측정하고, 그것으로 결과를 매기게 되면 이는 교육과 학습에 대한 신뢰가 없어진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IQ적 신념으로 만들어진 학습 형태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IQ는 아래로 갈수록 높은 신뢰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IQ가 높다고 해서 그가 꼭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IQ가 낮은데도 공부를 잘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느린 학습자의 신념이 만들어 졌다.
문제가 보이는가? A라는 검사를 하고 가장 낮은 등수를 받은 학생에게, 그 A라는 검사에 제일 어울리는 학습 방법으로 다른 학생들을 따라가라고 하는 것이다. 핵심은 학습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A라는 검사에서 매우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이 반드시 그 점수에 맞는 학습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학습에 대한 실질적인 기대치는 약간 왼쪽, 즉 상위로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30%안의 상위 학습자들만이 그 기대를 충족할 수 있다.
즉 고등교육에 필요한 실질적인 IQ의 수치는 이미 30% 이상에 해당하고(sd15로 약 110) 그러한 30% 이상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역으로 IQ가 높다고 성적이 다 좋게 나오는 것이 아닌 판국에, 거꾸로 그 아래에 해당하는 하위 70%의 집단에는 알맞은 학습 방법을 사용하여 학습을 시키는 것이다.
즉 너 이대로 따라가면 무조건 너는 안 돼, 답 없어, 실패자 확정이야 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따라가라는 것이다.
만약 IQ가 정상 이상이라면 이걸 보고 그대로 따라가는 건 지능이 모자라는 짓이라고 여길 것인데 그걸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현재의,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전혀 바뀌지 않은 교육의 전형적인 방식이다.
내 아이큐가 110 이상이라면 그런 교육 과정을 따라가도 문제가 없을 수도 있으나 아니라면 일단 문제가 있는 게 '정상'인데
그런 과정을 그대로 하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당사자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는(물론 그걸 모를 가능성도 높다) 일이지만, 거꾸로 기관 차원에서도 어처구니가 없다.개선방안
그러므로 이미 실패할 게 뻔한 방법을 쓰는 대신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
그런 방법의 대표적인게 바로 사실 이미 교육 과정의 핵심인 역량 교육이다.
기존 전형적인 방법은 사실 '경험 교육'이다. 이미 교육 과정은 사고를 중심으로 한 역량 교육을 표방하지만, 실제로 바뀐 것이 없으므로 전형적인 경험 교육에 해당한다. 경험 교육은 별 거 없다. 그저 보고 또 보고 또 보는 거다. 익히고 또 익히고 또 익히는 것이다. 반복, 연습 그리고 숙달이다. 그래서 까먹고 또 까먹고 또 까먹는다. 어차피 '평범한 애'나 '똑똑한 애'도 1년 뒤에 다시 물어보면 대답이 안 나온다. 물론 '많이 똑똑한 애'는 그 법칙을 벗어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단순 경험 교육은 이미 실패한 교육이다. 그래서 인지 발달 교육, 나선형 교육이 나오고 교육 공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가장 쉽고, 무엇보다 무리의 교육에 적합하기 때문에 여전히 대다수의 학교에서는 오로지 이 경험 교육이 전부다. 그 방법의 세세한 구조가 어떻던, 무엇을 하던 결국 인지하는 방식은 똑같다. 그냥 경험하고 기억하는 것, 더 쉽게 외우는 것이다. 그래서 IQ도 그렇지만, 공부는 기억력이 높아야 잘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교육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그것과 별 상관 관계가 없다. 그래서 역으로 상위로 갈수록 IQ와, 그리고 성적과 교육의 목표에 달하는 창의적인 사고가 가능한 똑똑한 사람은 일치하지 않는다. 렌줄리는 그래서 영재의 새로운 모델도 제시했다. IQ가 별로 효력이 없기 때문에 학습력, 몰입도, 새로운 시도라는 세가지 기준을 다시 제시했다. 즉 새로운 학습 방법을 제시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이를 바탕으로 한 심화 학습 이론도 있다. 이러한 심화 학습 이론은 얼핏 생각하면 영재들에게 어울릴 것으로 보이지만, 역으로 나는 느린 학습자들에게 이것이 꼭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경험적 지식을 쌓는 것이 굉장히 느려서 답이 없는 학생에게는 당연히 경험적 지식이 아닌 다른 방법이 강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이 느린 학습자에게 가능하냐는 질문도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역으로 이러한 느린 학습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뛰어난 성취를 만들어낸 예시도 많다. 그렇다면 적어도 불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이게 실제로 교육 목표이기 때문에 이게 만약 안된다면 사실 다른 방법이나 제도를 구상해야 맞다.기대효과
플린 효과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이 효과처럼 사람들은 시대가 지날 때 마다 더 똑똑해져 왔다. 당장 현재의 사람들은 천년 전의 사람들처럼 무지하거나 멍청하지 않다. 그 까닭은 사람들의 능력의 진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새로운 환경, 새로운 방식에 대한 적응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옛날이라고 하더라도 현대인들보다 더 우수한 환경, 우수한 방식을 갖춘 사람들은 압도적인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세상을 변화 시켰다.
이미 방향의 핵심이 역량으로 바뀌었고 중점 가치가, 경험과 노력이 아니라 사고력과 창의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 또 실패할지라도, 차라리 목적에 맞게 달리다 실패하는 것이 낫다.
그래야만, 계속해서 우리가 더 나은 변화를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바뀌어야 할 제도가, 여전히 쓸만하다고 해서 계속 쓰이고 있는 와중에
명백하게 그 피해를 불 보듯이 뻔한, 수학적으로 증명되는 학생들이 여전히 그 제도로 고통받고 실패하게 하는 것은
목표와도 관계없이 절대로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명백한 한 사람의 인권을 훼손하는 일이다.
가장 나쁜 것은 상대적인 상황에서 남보다 열심히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총 댓글 3
2024.08.1301:27
저도 같이 고민해보겠습니다.
2024.07.1112:37
그래서 뭘 제시하시는 건지요? 모르겠네요.
2024.07.0822:05
글을 읽으며 느린 학습자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비방, 욕설, 중복글 등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게시글, 상업광고 등 내용에 성격과 맞지 않는 글은 삭제됩니다.